주체에서 타자로 나아가며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여는 당신이 유빕이다.
"정의는 자유보다 우선하며 그 정의는 타자(他者)에 응답하고 책임을 짐으로써 타자를 환대하는 것으로 성립한다."
'타자철학'을 주창, 오늘날 가장 비중 있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레비나스는 20세기를 모두 포괄하는 삶을 살면서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폐해를 직접 겪은 히브리 전통의 유대인 철학자다.
그는 러시아에서 자랐고 독일의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그의 철학은 기구한 운명과 처절한 체험을 반영하듯 20세기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 특히 전체주의와 보편이론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동기가 짙게 깔려 있다.
요컨대 주체철학을 폐기하고 전체성을 넘어선 레비나스의 타자윤리는 타인(他人)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어떤 철학적 사유보다도 우선하는 인간의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다.
요즘처럼 막가파식의, 몰가치적이며 일방적인 소통문화 속에 사는 우리에게 레비나스는 시의적절한 윤리의식과 철학적 양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문제는 주체다
일반적으로 철학에서 제1원인은 언제나 신(神)으로 전제된다. 원인과 결과에서 결과는 원인보다 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으로 대표되는, 주체(主體) 중심의 존재론은 ‘나’ 이외의 모든 ‘타자’를 ‘나’의 인식 안으로 끌어들이며 ‘타자의 타자성’을 무시하고 동일자의 영역으로 환원시킨다. 또한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인 체계 안에서 재정의한다. 즉 존재론은 모든 것을 예외 없이 전체 속에 체계화하는 전체성의 철학인 것이다.
나아가 후설의 자아(의식)와 하이데거의 현존재도 ‘세계-내-존재’로서 모두 주체가 변화하는 시간 속에 있고 영원하지 않음을 나타내지만, 신 혹은 무한자는 주체의 바깥에 있는, 즉 외재성의 영원한 존재다.
레비나스는 전통적으로 서구의 주체철학이 방점을 찍은, 추상적 개념의 '존재'에게서는 사건(예: 양차대전 등)이 일어나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기에 철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 '존재에서 존재자로'
그 결과 타자철학이란 사람 대하기를 마치 하늘을 우러러보듯 타인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라는 동서고금의 보편적 윤리, '유빕(UVIP)'에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 생활의 발견 : 타자, 유빕의 욕망
무엇보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한 유대인의 전통과 신앙에 독실한 철학자로서 레비나스는 신과 타자에 대한 윤리를 발전시킨다.
그에게서 타자성은 (형이상학적) 생활의 발견이었기에 타인과의 만남은 곧 신과의 만남이며 궁극적인 자아의 실현에서 타자관계는 계시의 조건이 된다.
어차피 우리는 타자를 알 수 없다. 고로 자아인식의 바깥에 있는 大타자(Other)는 신 혹은 무한자이고, 小타자(other)는 소외된 이웃으로 상정함으로써 무한자를 대변하는 '타자의 얼굴(face of the Other)'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얼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윤리적인 최선의 길을 실천하라(예: '살해하지 말라' 등)는 낯선 욕망이 숨겨져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1961)>의 서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
"참된 삶은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 있다."
다행하게도 욕망이 세상 속의 우리를 참된 삶으로 이끌어준다고 보았다. 즉 레비나스의 형이상학적 욕망('유빕의 욕망')이 나아가는 곳은 자아(주체)라는 동일자의 확장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타자의 외재성이다. 이처럼 타자성은 초월을 매개로 하기에 전체화될 수 없는 무한성을 가진다.
이제 낯설고 약한 타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윤리의 지평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증오가 아닌 사랑의 참된 삶이다.
캐논 변주곡은 고유한 주제를 가지고 유한성의 반복ㆍ팽창을 통하여 무한성을 이루는 명곡이다.
주체에서 타자로 나아가며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여는 당신이 유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