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어제(2월18일)가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였다. 우수란 글자 그대로 ‘비와 물의 날’이다. 그 뜻은 겨울 내내 영하의 날씨에는 눈이 내렸으나, 영상의 날씨가 시작되는 봄의 시작부터는 비가 내려 얼었던 대지를 적시고 눈과 얼음을 녹여 온 세상에 물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동북아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바로 우수 때부터 농사가 시작되었다. 중국 한의학의 교과서라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 이시진(李時珍)은 “우수 때 땅의 기운(지기.地氣)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하늘의 기운(천기.天氣)은 내려와 비가 된다. 사람에게 있어 땀은 천지의 비와 같다”고 했다. 우수 때부터 온 하늘과 온 땅이 어우러져 세상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는 의미니 당연히 농부들은 논과 밭으로 나가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1816년에 지은 노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정월령을 보자. 정학유는 바로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저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둘째 아들이다.
 
정월은 이른 봄이니 입춘 우수 절기로다.
산속 깊은 골짜기에 눈과 얼음 남았으나 평야 마을 넓은 들은 풍경이 바뀌도다.
어와! 우리 임금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겨 농사에 힘쓰라는
간절한 교서를 온 나라에 널리 펴니
슬프다! 농부들아 아무리 무지(無知)하다 해서 네 몸을 돌본다고 임금 뜻을 어길쏘냐.
논과 밭을 서로 나눠 있는 힘을 다하리라
일 년 풍흉(豊凶)은 미리 알지 못하여도 있는 정성 다하면 하늘 재앙 벗어나니
모두모두 노력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끝 구절에도 나오듯이 사람이 잘살고 못사는 인생살이 풍년과 흉년이야 미리 알 수 없다 해도, 자기 일에 정성을 다하면 하늘의 재앙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농사였다. 씨앗은 땅에 심어도 그 결과는 하늘의 뜻이었으니, 결국 농업은 인간이 땅과 하늘과 나누는 대화이자 삶 자체였다.
 
내가 2009년에 불법다단계추방 시민운동을 정리하면서 귀농을 결심하고 충청도 수안보로 내려가 땅에 고하고 하늘에 절한 것은 인간 세상사를 잠시 떠나 이젠 땅과 하늘에 충실하고자 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였다.
 
歸去來兮(귀거래혜) 나 돌아왔도다!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 나가 무얼 구할 게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 친지들과 정담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 일러주니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 내일 서쪽 밭으로 나가 밭을 갈련다.
 
도연명(陶淵明)은 41살에 귀거래(歸去來)했다고 했던가. 그보다 좀 늦은 나이에 충청도 수안보 산골짜기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나는 봄을 알리는 우수 때부터 약초를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나 조선시대의 허준(許浚)이 약초를 연구한 것에야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내가 약초 재배에 몰두하고자 했던 것은 약초는 글자 그대로 사람과 세상의 ‘병을 고치는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초재배 계기란 바로 그것이었다. 당분간 속세와 단절하고, 불법 다단계추방 시민운동 친지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도(道)를 찾는 심정으로 산속에서 약초재배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조문도(朝聞道)면 석사가(夕死可)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의 말씀 그대로, 나는 어지러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심정보다는,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귀거래하고 약초 재배를 선택했다.
 
‘어지러운 세상’으로 진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10여년에 걸쳐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불법 다단계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대신해 법적 소송에 나서며, 그들을 대변해 다시는 이 땅에 불법 다단계나 방문판매가 없어져야 한다고 계몽활동에 나섰지만 그들의 가슴에 맺힌 아픔까지 치료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다른 근본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순한 법적 투쟁은 자칫 그들의 상처를 더 크게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 뜻이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 농사고, 그것이 바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아는 농업이라고 했다면 약초재배에서 분명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같은 과업이 바로 내가 생각한 성업(聖業)이었다. 우선 약초 농사를 근거로 ‘하늘의 땅의 이치’에 따라 성품(聖品)을 만들어 불법 다단계판매에 다친 사람들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문을 여는 개천(開天)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홍익인본주의의 이념이었다.
 
결국 “일 년 풍흉(豊凶)은 미리 알지 못하여도 있는 정성 다하면 하늘 재앙 벗어나니 모두모두 노력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는 정약용의 농가월령가 가사가 당시 내가 약초재배에서 찾은 참 진리였다. 또 “내일 서쪽 밭으로 나가 밭을 갈겠다”는 도연명의 장유사어서주(將有事於西疇)는 그 실천방안이 되었다.
 
이제 우수가 지났다. 봄기운이 온 천지를 뒤엎고 얼었던 땅에 새 생명이 터를 잡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바로 이때가 홍익인본주의의 씨를, 손에 손잡고 함께 어울려 사는 상생의 씨를 대지에 뿌릴 차례다.
 
기독교(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는 가을 추수기에 알곡은 곳간에 저장되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진다고 했다.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원시반본(原始返本)라 하여 모든 천지만물이 가을에는 반드시 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렇다. 이 봄에 뿌리는 우리 가슴의 씨앗은 분명 가을에 풍성한 열매가 되어 하늘의 문을 여는 개천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도 가을 추수기를 대비해 경제민주화라는 상생과 공존을 씨앗을 잘 뿌리고 잘 가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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