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 익(益)은 “무엇을 이롭게 하다”라는 타동사로서 ‘인간’을 목적어로 한다. 그래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금 억지를 부려 ‘익’자를 형용사로 가정한다면 ‘널리 이롭게 하는 인간’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또 하나의 창조적 인간형이다. 아니 또 하나의 인종(人種)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람이다. 주변에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에 근무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겠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늘 여유가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현재 힘들거나, 과거에 어려운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이 갑자기 남을 돕겠다고 나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이다.

추운 겨울을 뼈저리게 겪은 사람이라야 봄을 안다. 꽁꽁 얼어붙어 몸이 움츠러진 경험을 겪어볼수록 햇빛의 따사함을 안다. 동아시아 대륙 대부분의 국가와 민족이 중화문명에 흡수돼 현재 중국 영토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 한국만이 유일하게 독립국가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 같은 ‘홍익인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선 국가의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국기의 중앙에는 태극이 있다. 그래서 태극기다. 나는 태극기를 볼 때마다 창조적 인간형인 ‘홍익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중앙의 태극은 부드러운 물결과 같이 굽어지지만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진 디자인이다. 그 안에는 음(陰)과 양(陽)의 우주변화와 진리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인생의 변화도 바로 그 속에 있다.

태극기를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로 보자. 우리가 태극기를 그릴 때 중앙의 둥근 원부터 그린다. 그것이 무극(无極)이다. 그 다음 동근 무극 안에 곡선의 태극선을 그려 넣게 되는데 그 처음 시작점이 바로 춘분(春分)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반원을 따라 밑으로 내려오다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 가장 낮은 지점이 바로 하지(夏至)다.

그리고 부드러운 반원이 태극 원의 중앙에 이르는 곳이 바로 추분(秋分)이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지점이 동지(冬至)다. 그렇게 춘하추동은 순환한다.

내일(3월20일)이 바로 태극의 시작점인 춘분이다. 그 날은 우주만물의 시간과 공간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양(陽)의 낮과 음(陰)의 밤이 길이가 정확히 같다. 추위와 더위를 가르는 온도도 같다.

이 춘분은 바로 자미원(紫微垣)에서 컨트롤하는 우주의 변화에서 나왔다. 낮에 뜨는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赤道)를 통과하는 점, 곧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교차하는 점에 이르렀을 때다. 그래서 그 지점을 춘분점(春分點)이라고 한다. 바로 그 순간에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양(陽)이 정동(正東)에, 음(陰)이 정서(正西)에 있게 된다.

그래서 음양(陰陽)은 철학적으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는 대대(待對)관계라고 한다. 독불장군이 없고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말한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진리지만, 지구의 기울기로 인해 음과 양이 교차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한다는 진리는 자못 어렵다.

우리의 전통사상인 생장염장(生長斂藏)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봄철에는 싹을 내고(生.생), 여름철에는 기르고(長.장), 가을철에는 열매를 맺고(斂.염), 겨울철에는 저장(藏.장)을 하는 우주만물의 변화작용이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다.

겨울이 죽은 계절이지만, 그러나 죽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는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 봄의 시작을 무한한 공간인 우주가 공인하는 시간이 바로 춘분이다. 우리 인생의 봄은 그때부터 시작이 된다.

나의 죽은 사상을 온 우주에 휘몰아다오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는 시들은 낙엽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으로

마치 꺼지지 않는 화로의

재와 불꽃처럼 내 말을 인류 사이에 뿌려다오

잠자는 대지에서 내 입을 통해 전해다오

예언의 나팔이 되어다오,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쉘리(P.B. Shelly)의 연작시 <서풍(書風)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그 지구 속의 모든 것이 순환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여름이 오면 동구 밖 과수원 길에서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핀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면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으며, 곧 겨울이 와서 앙상한 겨울나무가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게 된다.

바로 생장염장의 사이클이다. 인생도 순환한다. 그래서 2011년에 사망한 ‘희망 배달부’ 김우수 씨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여유가 있을 때 돕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나눔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거든요.” 그 역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우수 씨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인해 수감생활을 하던 중 옥중에서 어린이재단에서 발간하는 '사과나무'라는 잡지를 보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로부터 그 자신이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출감 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배달하며 작은 돈이지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3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하지만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운동회에 초대해 주고, 자신들의 삶을 편지로 전해주면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희망의 자장면을 배달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2011년9원25일 아이들 곁을 영원히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기부천사로 불렀고, 희망배달부라고도 했다. 그의 장례식 상주는 어린이 재단의 회장이자 배우인 최불암 씨가 맡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비서관들을 보내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김우수 씨는 지금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다.

나는 김우수 씨를 ‘세상을 널리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내가 진정 닮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삶과 죽음을 음과 양의 개념으로 보려 한다. 따라서 생장염장의 원리에서 보면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봄은 온다. 조금도 한 순간의 희노애락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내가 올해 춘분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올해도 4월5일 식목일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친지들과 자미원에 모여 과일나무와 약초를 계속 심어나갈 것이다. 우리가 가도 영원히 후손들에게 전해줄 그런 나무와 약초를 심을 것이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