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대표이사)
40대 이후의 세대라면 대부분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먹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콩나물을 기르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특히 신선한 야채가 부족하던 겨울철에 어머니는 안방 윗목에 시루를 놓으시고 그 위에 콩나물을 기르셨다. 눈 내리는 긴 긴 겨울 밤, 초저녁부터 잠에 떨어졌던 내가 잠시 깰라치면 그때까지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께서 콩나물에 물을 주시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콩나물은 자주 물을 주어야 한단다. 그래야 잔발이 많이 나지 않고 연하지. 물을 게을리 주면 잔발이 많이 나고 맛이 없어”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콩나물을 덮은 검은 천을 들추고 물을 주곤 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란 말이 바로 콩나물 기르기였다. 물 한 바가지를 뿌리면 시루에 뚫린 구멍으로 주르르 다 흘러 떨어지는 법이었는데, 물기만 스쳐지나가는 그 물주기에 콩나물이 쑥쑥 자라는 것이 어린 내 눈에도 신기하기만 했다.

검은 천을 씌운 것은 빛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이유였다. 어머니 말씀인즉, 그래야 색깔이 노랗고 부드러운 영양만점의 콩나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른 콩나물은 우리 집 식탁의 중요한 식량이었다. 콩나물이 알맞게 자라면 먼저 자란 싹을 솎아 주듯 적당히 뽑아 콩나물국도 끓였고, 나물로도 무쳐 먹었다.

압권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인 초봄의 콩나물밥과 달래간장의 궁합이었다. 어머니는 쌀을 안칠 때부터 콩나물을 다듬어 쌀과 함께 넣어 지으셨는데, 밥이 다 익어 솥뚜껑을 열 때면 온 집안에 콩나물 향기가 가득 차곤 했다. 그 콩나물밥에 아차산 주변과 한강가(내 고향이었던 현재 서울 광진구 구의동 부근)의 눈 녹은 양지쪽에서 누나와 할머니가 뜯어 오신 달래를 넣어 만든 양념간장으로 쓱쓱 비벼 먹던 맛을…, 나는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고춧가루를 푼푼히 넣은 콩나물국을 끓이셨는데, 특히 할머니께서는 그 콩나물 국물을 쭈욱쭉 들이키시면서 “에미야! 거참 시원하구나!” 하시며 국물만 더 달라하시곤 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만큼 콩나물을 비롯해 달래, 냉이, 씀바귀 등 각종 나물들은 우리의 몸과 살을 이루는 삶의 일부로서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콩나물을 산과 들에서 채취하는 것이 아닌, 시루 위에서 인위적으로 길러 낼 만큼 그 효능을 알아보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 조상들의 건강과 음식의 지혜가 그 콩나물 속에도 듬뿍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의 소개에 따르면 우선 콩나물은 위장에 쌓인 열을 풀어주며, 몸속에 기운을 잘 통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할머니는 시원하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바로 콩나물 속의 아스파라긴산 효과라고 한다. 그 성분이 해독을 해준다는 것이다.

콩나물은 또 몸속에 쌓인 노폐물과 찌꺼기들을 해소하고 그로 인해 막힌 부분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여성들의 나쁜 피 즉 어혈까지 제거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콩나물은 땀을 잘 나게 함으로써 몸이 찌뿌듯하며, 여기저기 결리고 저린 것, 근육이 뒤틀리며 아픈 것까지 치유한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듯이 감기 환자의 경우는 콩나물국에 고추 가루를 넣어 먹으면 감기퇴치의 효과까지 볼 수 있다. 그것은 위장의 열을 풀어주는 기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우리나라의 명약인 우황청심환에도 콩나물이 들어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또 콩나물을 냄비에 넣은 후 꿀을 두 스푼 정도 넣어 약한 불에 쪄내면, 그 콩나물 국물과 꿀의 효능으로 콧물감기, 목감기에 효능이 좋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혈압, 심장질환, 부종 등에까지 효력이 있다고 하니, 나물 하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추억의 콩나물’로 예를 들어 말했지만, 콩나물이 나물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 아니 콩나물은 그저 일(一)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을 보자. 콩나물과 같은 그런 효과 만점의 나물을 아홉 가지나 먹도록 정해 놓은 날이 바로 그 날이 아니던가.

나물과 나물의 화합과 공생이 우리 민족의 에너지 원천이었다. 김종국 전주대 교수가 ‘전주비빔밥 찬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물과 나물의 조합이 또 다른 맛을 창조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 즉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화합하고 어울림을 추구하는 홍익(弘益)의 철학이 우리의 식탁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자연과 몸을 섞어 사는 것이 가장 적합한 생(生)의 순리임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가. 오랜 옛날부터, 아마 원시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새해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에 산과 들에서 나오는 아홉 가지 나물을 먹으면, 겨울 동안 없어진 입맛을 되살리고, 체력을 보강하며,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험해왔다. 그만큼 우리의 금수강산에 분포해 있는 각종 나물의 맛과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월 대보름날 먹는 아홉 가지 나물의 포트폴리오는 지역마다, 그리고 집집마다 입맛에 따라 다르게 구성할 수 있었다. 보통은 무, 오이, 호박, 박, 가지, 버섯 등을 말려둔 것을 먹는다. 여기에 새해 차례상에 올리는 삼색나물, 즉 푸른나물로 시금치, 흰 나물로 도라지, 갈색(흑색) 나물로 고사리를 함께 섞어 아홉 가지를 구성해 먹었다.

또한 곤드레, 곰취, 시래기, 번행초, 눈개승마, 토란대, 취나물, 피마자나물, 호박오가리, 다래순, 고구마순, 숙주나물, 무채 등을 넣어 구성하기도 했다.

이 나물과 쌀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어 나타난 것이 바로 비빔밥이다.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콩나물과 달래 양념간장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비빔밥을 만든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식단 포트폴리오는 언제든지 환상적인 비빔밥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그 비빔밥이 이제는 한류음식으로 전 세계인에게 전달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15년 전인 1998년에 자체 개발한 기내식 비빔밥으로 국제기내식협회로부터 ‘기내식 부문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머큐리상을 수상했다. 대한항공은 2009년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를 시작으로 국제 규모의 관광박람회에 꾸준히 비빔밥을 출품하고 있다.

그때부터 비빔밥의 해외수출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6년 우리의 전통적인 비빔밥과 빵·술의 해외수출 규모는 8억4300만 달러였는데, 2010년에는 12억4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조3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났을 만큼, 비빔밥은 이제 중소기업들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수출효자 품목이 되고 있다.

그것은 초창기 시장개척에 나선 대한항공의 도전과 ‘비빔밥유랑단’과 같은 한식세계화 민간단체의 노력, 관광공사 등 관계기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비빔밥이 햄버거와 같이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테이크아웃 식품’으로 진화해 요즘 미국에서는 ‘비빔밥 버거’, 일본요리 전문 체인점에서는 ‘비빔바’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 비빔밥을 나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리 회사가 운영하는 충북 수안보의 자미원농장이 5월29일로 개장 3주년을 맞는데 그 기념으로 ‘백초비빔밥’을 개발한 것이다. 김종국 전주대 교수가 10여종의 나물이 들어가는 전주비빔밥이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에 기(氣)를 불어넣어 자연치유하도록 설계된 한국의 대표음식”이라고 소개했던 것을 감히 더욱 발전시켜볼 계획이다.

즉 자미원에서 재배되는 1,200여종의 약초와 나물 중에서 맛과 영양이 좋은 100가지의 나물을 엄선해 만듦으로써 백초(百草)비빔밥이라 명명했다. 전주비빔밥에서 말하는 오장은 물론 백초비빔밥은 육부(위장, 대장, 소장, 쓸개, 삼초(三焦), 방광)에까지 기(氣)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설계해 3주년기념식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대접할 계획이다.

자미원의 모든 약초와 나물들은 수안보의 깊고 험준한 산세를 배경으로 천연 야생농법 그대로의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정성은 어릴 때 어머니가 콩나물을 기르시던 그 이상이다. 비빔밥(화합과 조화)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든 오셔서 드실 수 있도록 무려 500인분을 준비했다. 그러니 오시라, 어울림의 미학이 있는 자미원으로!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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